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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게 뭐라고/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사는게 뭐라고/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사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요.. 그냥 그런거죠.. 라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습니다.
무겁지 않으며 심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가볍지도 않죠.
나이 든 할머니. 하지만 소녀이고 싶은 여자 이기도 하지요.
노년을 향해가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늙음에 대한 가치관을 쉽게 풀어낸
재밌는 글


p 18.

 

 유유코의 요리를 보고 깨달았다. 세상에는 대범한 요리와 좀스러운 요리가 있다는 사실을.

p 19.
 잘 할때와 못할 때의 격차가 커서 나 조차도 내가 만든 음식을 입에 넣었다가 뱉어버린 적도 있으니까. 불안정한 인격이 요리에 그대로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p 42.
 유리공예가인 마리는 "인간은 생산적이어선 안 돼. 쓰레기나 만들 뿐이니까"라고 말했다. 본인은 실로 아름다운 유리 공예품을 만들면서도 이런 말을 한다.

p 62.
 오빠, 오빠는 모르는 채 죽었지만 사는 것도 정말로 고단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도 몇 번이나 있었는데 사는 동안은 죽을 수가 없어.

p 64.
 베를린에서 지낸 하숙집의 주인이었던 안젤리카는 오렌지를 식탁에 낼 때면  "이건 비타민C 란다."하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오렌지 맛이 아닌 비타민 C맛이 나는듯해 식욕이 떨어졌다.

p 75.
 노노코는 신체장애 1급이 된 이후 하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재활 치료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연주회에도 나가는 것 같지만 절대로 친구들을 부르지 않는다. 모두들 저렇게 건강한 병자는 처음 본다고 앞다투어 말한다.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노노코는 어째서 저렇게 활기가 넘칠까?" 페페오 씨에게 물어봤떠니, "친구들이랑 있을 때만 저래. 상태가 나빠지면 화를 내면서 어째서 병에 걸렸을 때 살린 거냐며, 왜 그때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느냐며 울어"라고 했다. 나는 페페오 씨의 얼굴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었다니. 한 달 전쯤 노노코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너희 남편도 할아버지니까 슬슬 신경 써야지. 어디 아프면 곤란하잖아." "정말 그래. 근데 우리 남편도 음흉하다니깐." "왜?" "피곤하다는 소릴 절대 안해. 음흉하지 않니?" 나는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아. 페페오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따라 죽을 거니까."
 나는 그때도 노노코의 얼굴을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 96.
 하지만 사람에게는 저마다 식사의 미학이라는 게 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후의 순간까지 남겨두었다가 한입에 쏙 넣고 음미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p 103.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호텔에서 오믈렛을 보고 깜짝 놀랐다. 커다란 접시에 오믈렛이 축 늘어져 있었다. 계란 여섯 개가 1인분이라고 했다. 아, 미국인은 야만인이다. 그 옆에서는 채식주의자인 성싶은 여자가 샐러드만 먹고 있었다. 그 샐러드 볼은 우리 집 설거지통의 4분의 3정도 되는 크기였다. 말처럼 먹는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말도 먹을 때는 위턱과 아래턱을 비틀어대며 천천히 먹는다. 그 여자는 음식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듯 먹었다. 아무리 채소라도 그 정도로 먹으면 살찐다. 풀만 먹는 소들도 마블링이 감도는 스테이크가 되지 않는가.

p 131.
 구다라나이(하찮다, 시시하다라는 뜻. '구다라'는 '백제'의 일본어 발음, '나이'는 없다는 뜻이다')는 '벡제에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아, 그랬구나.

p 134.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에 골인했떠라도 뜨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제는 남편과 자기도 싫고, 섹스라면 지긋지긋하다. 남편뿐 아니라 그 누구와도 자기 싫은 것이다. 설령 잔다 하더라도 앞으로의 전개를 꿰뚫어볼 정도의 지혜는 충분히 지녔다. 몸이라면 더 이상 안 써도 괜찮다. 귀찮고 성가시다. 하지만 사랑은 받고 싶다. 애정으로 한가득 채워지고 싶다. 그것도 두 사람에게 죽도록 사랑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드라마가 이루어지려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섹스장면이 없다. 키스조차 드물다. 얼굴을 맞대고 껴안는 정도가 딱 좋다. 
- 중략 -
이성은 모순을 허락하지 않지만 감성은 모순의 마그마다. 무엇이든 들어오라. 어서 들어오라.

p 149.
 딱지처럼 지구에 들러붙은 저것이 인간의 생활일까. 꼭 SF영화 속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부감도 같아서, 내게는 인간의 생활이 도무지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 만큼 도시는 거대했다.
 대도시에 들러붙은 딱지같은 저것은 지구의 암이다. 섬뜩하게 증식하는 암세포. 도쿄뿐만이 아니라 홍콩도 샌프란시스코도 런던도 카사블랑카도 마찬가지다. 대도시는 지구에 흩뿌려진 암이다.

p 155.
 아, 피곤하다. 살아있는 인간들 틈에 끼어서 때로는 섹스할 때보다도 한층 더 몸을 딱 붙이고, 생판 모르는 남과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몸을 부닥치고 있는 건 생각하면 할수록 불쾌하다. 살아있는 몸뚱이들.

 살아 있는 인간이란 정말로 고달프다.

p 163.
 "서예는 왜 그만뒀어?" "난 글씨본대로밖에 못 쓰겠더라. 내 글씨가 안나와. 재능이 없었던 거지."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점이 훌륭하다. 그것도 몇십 년이나 계속한 끝에 인정하다니 대단한다.

p 179.
 부인은 논리를 추구하며 조리 있는 대화를 원한다. 10년이나 지치지도 않고 논리와 조리를 좇으며 허무함에 눈물을 흘렸다. "이제 그이는 죽었어요"라고 하며 이혼하고 외국으로 갔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끝없이 논리를 추구한다.
 적은 말수 속에 따뜻한 마음과 측은지심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p 182.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p 187.
 어쩌면 사람은 모두 작은 히틀러일지도 모르고, 또 한편으로는 압제정치에 짓밟히는 시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어른인 걸까.

p 196.
 인간의 욕구는 커져만 가는데 본능은 거의 죽어가고 있다. 본능 속에 논리를 품는다는 점이 동무로가 인간의 차이다. 욕망은 권리가 아니다. 자기 아이가 갖고 싶어서 남의 배를 빌리는 건 범죄보다 심한 짓이다. 욕망은 돈이 해결한다.
 인류는 망해가고 있다.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어쩌면 사람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 모른다.

p 206.
 나 같은 건 정보의 쓰레기장이다.

p 207.
 누군가 "사와코 씨 차는 재규어죠?"라고 묻자 "네, 그런데요"라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 나는 재규어를 탈 처지가 아니지만, 만약 돈이 있더라도 재규어를 타는 게 쑥스러운 건 어째서일까. 사와코 씨와 헤어지고 나서도 한참 생각했다.
 나고 자란 환경 탓이겠지.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리고.
 성장 환경이란 중요하구나. 그건 노력해봤자 몸에 배는게 아니다.

p 221.
 부부 생활 중 몇십 년은 몹시도 괴로우리라는 것을. 하지만 고통스러워도 그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후 때문이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화사한 마음을 건네받지 못하는 동지끼리 툇마루에서 말없이 감을 깎아 먹고 차를 마실 날을 위해서다.

p 239. 
 요전에 집에 놀러 왔을 때는 "사노 씨, 앞으로 1년 정도면 죽는데 무섭지 않아?"라고 묻기에, 산송장한테 그런 질문은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전혀, 언젠가는 죽는 걸.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태연한 거야? 두렵지 않아?" "안 무섭다니까. 오히려 기뻐. 생각해봐. 죽으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돈을 안 벌어도 되는 거야. 돈 걱정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행운인걸."

p 243.
 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도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 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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