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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이별/ 김형경/ 푸른숲

-. 좋은 이별/ 김형경/ 푸른숲




p 28.
현대 정신분석학자들은 병리적 애도란 없다고 주장한다. 이별 후에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 당사자에게 필요하고 정당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p 29.
 이별할 때면,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면의 모든 감정이 일시에 솟구쳐 오른다. 평소와는 다른, 어둡고 혼돈스러운 내면으로 들어가 …중략… 부정적인 자기 모습과 만나게 된다. 바로 그것을 마주 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이별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p 43.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가 목표로 하는 지점은 내면에 의존하고 있는 부모 이미지를 떠나보내고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개인으로 서는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와 관계된 애증의 감정으로붜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내면의 부모를 떠나보내는 일은 마음의 지진이나 산불과 같다. 유아기 때부터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해온 자기 내면을 완전히 뒤짚어엎는 일이기 때문이다.

p 44.
 애도 작업은 내면에서 작동하는 낡은 삶의 플롯, 어린 시절에 머물고 있는 내면의 자기를 함께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치유와 성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애도 작업을 잘 이행하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게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타인도 잘 알아보게 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커진다. 애도 과정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나오면 정서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삶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이해력이 커진다.

p 45.
 그보다 좋은 것은 애도 작업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상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혼자 힘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감과 자율성이 강화된다. 그리하여 애도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결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생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며 새로운 자기, 새로운 비전, 새로운 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p 53.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나는 상실의 슬픔을 껴안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감정과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슬픔으로부터 도망쳐 숨을 대상으로 일거리를 찾아다녔고, 그 상실에 대해 말하지 못해 엉뚱한 나뭇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 후로도 상실의 슬픔과 고통에 정직하게 닿지 못한 채 그저 ‘참을 수 없다’고만 느꼈다.
 예상치 못한 상실로 충격을 받을 때 몸과 마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다. 재빨리 감저오가 감각을 마비시켜 충격이 몸과 마음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p 56.
 우리는 대체로 머리로는 죽음을 이해하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내려보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p 59.
 상실감이 마음을 덮치면 그 암흑과 같은 절망이 영원할 것 같은 두려움이 인다. 그러나 일찍이 솔로몬 왕이 반지에 새긴 단 하나의 중요한 문장처럼, 모든 것은 지나간다.

p 63.
 충격과 마비의 상태에서 벗어나 비로소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면 이번에는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을 받아 안아야 한다.

p 67.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과 복원력이 있으며, 우리는 슬픔이나 고통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중략) 자기 연민을 느껴본 사람만이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을 가질 수 있다.

p 73.
 사랑을 잃었을 때 화를 내는 것은 유아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아기들은 자기에게 만족스럽고 편안한 것은 좋은 것이고, 불만스럽고 불편한 것은 나쁜 것으로 이해한다. 내게 좋은 것은 사랑하고 내게 나쁜 것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고,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에게 화를 내고 신을 공격하는 것은 상실의 순간 우리가 잠시 유아기로 퇴행하기 때문이다.

p 93.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상실한 대상에게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한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행하는 많은 행동들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 보고 싶어 상대방의 직장이나 집 근처를 서성이거나,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이메일이나 음성 메시지를 엿듣거나, 그의 홈피를 방문해 일과를 체크한다. 술에 취해서 전화하거나 문자 보내기, 그의 친구들을 만나 어떻게 지내는지 염탐하기, 전화를 걸어놓고 말없이 끊기. 그 모든 행동이 살실과 부재의 공간을 향해 열정을 쏟아붓는 일이다.
 그 관계에서 잘못한 점을 끝없이 후회하면서 시나리오 다시 쓰기, 잃은 대상을 되돌려 받기 위해 힘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와 협상하기, '만약에 게임'을 한도 없이 이어가면서 그 관계를 복기하기 등등. 시간의 바퀴를 되돌리기 위해 애쓰고, 정서적 존재 전부를 걸고 상실과 싸운다.

p 114.
이별의 미, 한용운
이별의 미는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p 115.
"왜 아름다움은 늘 멜랑콜리와 관계되는 걸가?"
아름다움과 멜랑콜리가 연결되는 지점에서 바로 상실과 애도가 존재한다. 상실은 대상을 미화,인상화 할 뿐 아니라 대상과 무관하더라도 '아름다움' 그 자체에 탐닉하게 된다. 우울증을 베일이나 장신구처럼 자신을 치장하는 요소로 사용하는 여성들처럼, 상실을 아름다움으로 변형하여 살아갈 힘을 만들어낸다.

p 142.
 멀리 떠나는 사람들은 먼 길을 돌아와서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그렇게 해도 마음의 문제, 삶의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p 167.
 긴장이나 불안이 극한에 다다랐을 때 손목을 그으면 그 순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불안감이 가라앉는다. 그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자신에게 되풀이하는 강한 반복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죽음인 셈이다.

p 170.
 자살 생각은 커다란 위로다. 우리는 많은 힘든 밤들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사히 보낸다. - 니체

p 175.
 조증(matic)이라고 번역되는 그 심리 상태는 어떤 감정이든 과도하게 팽창되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진정되지 않는 감정의 폭발, 혹은 에너지 과잉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불안감이든, 나르시시즘이든, 행복감이든 보통의 경우보다 높은 상태로 오래 지속된다면 그것이 조증이다.

p 178.
 그럼에도 카사노바는 자신이 거쳐온 그 모든 여성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미식가가 음식을 사랑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식가는 음식을 탐닉할 뿐 음식과 정신적으로 소통하거나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않으며, 식사가 끝나면 식탁을 떠난다. 미식가가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미각이다. 카사노바가 사랑한 것, 아니 광적으로 몰두한 것은 자신의 감각일 뿐이었다.

p 183.
 소중한 대상을 잃었을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는 식습관과 관계된 것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나는 밥을 먹고있다니....." 그런 종류의 죄의식은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으로 가기 쉽다. "가버린 사랑 따위는 끝난 것이고, 남은 사람은 살아야지....." 그러면서 슬픔과 함께 양푼 비빔밥을 꾸역꾸역 떠 넣는 사람들은 폭식증으로 가기 쉽다. 아무리 굶어도 떠난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슬픔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 행위를 멈출 수가 없다.

p 184.
 상실의 경험이 자주 섭식 장애로 표현되는 이유는 우리가 최초로 느끼는 사랑이 먹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아기 때 우리는 젖을 주고 안아주는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우리의 내면에는 사랑은 먹는 것이라는 무의식적 공식이 자리 잡고 있다. 아기 때 엄마를 좋은 젖가슴, 나쁜 젖가슴으로 나누던 방식으로, 이별하면 사랑이 나쁜 젖가슴처럼 느껴진다. 그리하여 밥을 먹을 때 독을 먹는 듯한 불안감을 안게 되는 것이다.

p 199.
 정신분석학자들은 애도 작업에서 성취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로 양가감정의 통합을 꼽는다. 떠난 사람에 대해 느끼는 사랑과 분노를, 감사하는 마음과 시기심을, 관용과 질투를 모두 자기 내면에서 합쳐야 한다. 멀리 떨어뜨려둔 부정적인 감정들을 건강한 마음과 합쳐서 자신의 일부로 만들면 그만큼 마음이 크고 튼튼해진다. 내면을 억압하는 데 사용하던 에너지도 보다 창의적인 곳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p 208.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우리는 슬퍼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딱딱해지고, 몸이 아프고, 삶이 방향 없이 표류하게 된다. 지금까지 열거된 다양한 증상들, 그리고 우울증조차 제대로 슬퍼하지 못해 생긴 결과이면, 슬픔의 왜곡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울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뒤늦게라도 울음이 터져 나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마음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p 211.
 슬픔의 문제가 한 번 크게 우는 것으로 해결되는게 아니라, 두고두고 반복해서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에 둔 의식이라는 것도 짐작되었다.
(중략)
 슬픔의 유용성, 울음의 정화 기능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인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비극을 만들어 대중 앞에 공연하면서 관객들을 울게 만들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마음속에서 들끓던 야수 같고 어수선한 것들이 걷히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가 찾아온다. 그런 때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도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 현상을 카타르시스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p 246.
 애도 작업의 마지막 단계는 잃은 대상을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일이다. 죽음 쪽으로, 텅 빈 상실 쪽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적절한 시점에서 과거의 인물을 떠나보내야 한다. 동시에 과거의 인물과 관계 맺으며 형성한 과거의 자기도 떠나보내야 한다. 연인에서 싱글로, 아내에서 미망인으로, 누군가의 자식에서 부모 없는 사람으로 달라진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p 250.
 그리하여, 지금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증거'라면 이런 것들이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서너 달쯤 칩거할 때 어디까지가 자폐 성향이고 어디부터가 성찰과 탐구의 시간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비하적인 음담패설이 오가는 자리에서 빠져나올 때 어디까지가 신경증적인 반응이고 어디부터가 건강한 자기 존중감인지 구분할 수 있다. 종교를 수용할 때 어디까지가 의존성이고 어디부터가 인류의 지혜가 담긴 보물 창고에 접근하는 일인지 구분할 수 있다. 안다고 느끼는 것이 또 하나의 교만일지 모르겠지만, 심리 내면의 그런 미세한 차이들을 구분하여 감지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내면의 평온이 흔들리지 않을 때 내가 괜찮아졌다고 느낀다.

p 251.
 불교의 출가처럼, 세속적 만족을 위한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정식적 가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일도 있다. "나날의 삶에서 신성을 찾는 일은 대체로 더하기보다는 빼기의 문제였다"라고 힌두교 성자 라마 수리야 다스는 말한다. 빼기의 문제란 바로 떠나보내기, 분리되기의 의미일 것이다. 떠나보내는 일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공간을 내면에 확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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